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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타종
이름 정찬명
조회수 128
등록일 2021-03-19
내용

타종/ 정찬명

 

   2021년이 되었다.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이다. 어제는 우리 지역에서만 10명의 확진자가 나와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시장통과 식당, 그리고 공공기관까지 가리지 않고 확산 되는 추세이다.

  교직 32년 차이지만 작년부터 온통 혼돈의 시간이다. 대면 수업과 병행하여 실시되는 영상을 통한 화상 수업은 이제 일상의 수업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지쳐가는 여린 학생들의 피로감은 더욱 크게 피부에 와 닿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부터는 타종의 내용이 확 바뀌었다. 길게 몇 번, 혹은 짧게 울리던 학교의 종소리가 언젠가부터 가수의 랩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에게는 가시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음이다. 부분적으로 창문 열고 환기해라든가 마음만은 가까이 등몇 마디는 알아듣겠는데 나머지 부분은 전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궁리 끝에 제자들에게 물어 보았다.

  “음악의 가사가 들리는 학생은 선생님에게 알려 주세요.”

  상품이라도 걸어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라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의문을 던져 보았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서도 정확한 가사의 내용은 확인하지 못하고 말았다.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와 검색을 시작했다.

  ‘경기도 교육청 소재 학교의 타종 가사

  여러 군데 사이트를 옮겨가며 검색 단어를 넣어봤지만 가사 내용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여러 번 시도를 하다가 타종 멜로디가 가수 ‘*아무 노래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를 개사하여 타종으로 입력함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개사한 내용의 정확한 가사는 무엇일까? 몇 군데 더 뒤져서 찾아낸 개사의 내용은 이랬다.

왜들 그리 문을 안 열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자가 진단 어서 해

요샌 이런 게 유행이래

창문 열고 환기해

코로나가 줄어들어

옆 친구와는 거리 둬

마음만은 가까이

요샌 이런 게 유행이래

 

  참 마음이 복잡하다. 교단, 교편, 교과 등의 낯익은 단어들이 사라져 가는 느낌과 더불어 점점 불안정해 가는 나의 감각기관들의 퇴보가 아쉽다.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퇴임이다. 좌불안석이다. 더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는, 말 그대로 다가올 다음 세대에게 비워드려야 하는 의자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 기간 신발끈을 조여 매며 노심초사로 살아온 날들이다. 훈장의 *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시금 종소리가 들려온다.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며 교무실 문을 나선다.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하소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칭찬을 쏟아붓게 하소서. 좋은 스승으로 유익한 것들만 전수하게 하소서. 때론 아버지 같은, 아니 할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품으며 인자하고 여유 넘치게 모든 것을 수용해 줄 수 있는 은사, 무너져 가는 모습의 아이가 무슨 말을 하여도 다 녹여서 이순(耳順)의 나이에 걸맞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때론 상담가, 때론 전문 지식과 살아 있는 지혜의 전달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분필 대신 와콤 펜을 든다.

 

20213월 어느 봄날 점심 후 교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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